충격적인 기억(traumatic memory)으로 인해 생긴 불안과 지속적인 고통은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과거의 나쁜 기억을 약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공포스러운 기억에서 오랜 시간 헤어나오지 못할 경우, 다양한 정신적·감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불안장애(anxiety disorder), 공포증이 그 예이다. 이들에게는 우울증이나 불안증에 대한 약물요법뿐만 아니라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기타 심리치료를 권할 수 있다.
장기적 고통을 유발하는 기억을 치료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스페인, 미국, 네덜란드 5개 기관 공동연구진의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이번 연구는 최근
Science Advances 저널에 게재되었다.
■ 고착된 기억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을까?
수석 저자인 Ana Galarza Vallejo 박사는 충격적인 경험으로 발생한 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문제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학계에는 “고착된 기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그러한 기억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연구를 통해 확인하였다고 말했다.
저자는
“초기 기억은 매우 불안정하고 예민하여 전기충격요법(electroconvulsive therapy, ECT), 전신마취, 단백질 합성 억제와 같은 외부자극에 영향받는다. 하지만 강화기간(consolidation period)을 거쳐 기억은 점차 안정되고 고착화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 동물실험을 통해 이미 굳혀진 기억이 외부자극에 의해 단기간에 재활성화되어 취약성(vulnerability)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지난 결과에 기반하여 연구진은 이번에는 사람에게 마취제인 프로포폴(propofol)을 이용한 시험을 진행하였다.
■ 적절한 시점에서 진정작용은 나쁜 기억을 변화시킬 수 있어
50명의 건강한 대상자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내용이 담긴 영상 2개를 관람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쁜 기억을 재활성하기 위해 1주일 후, 첫번째 영상을 다시 보여주면서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참가자들이 부정적인 기억을 상기하였을 때, 연구진은 대상자들의 기억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진정효과를 가진 프로포폴을 주사하였다.
한편 두번째 영상에 대한 재상영이나 질문은 없었다. 이후 대상자들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번째 그룹은 프로포폴 주입 24시간 후, 두번째 그룹은 주입 직후에 두 영상 기억정도를 평가하였다.
그 결과, 첫번째 그룹의 기억이 상대적으로 약했으며 기억 강화작용이 효과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즉, 프로포폴 사용 전에 상기한 부정적 기억들이 남아있기는 하였지만 두번째 그룹에 비해 약화되어 있었다.
Vallejo 박사 연구팀은 비침습적인 방법을 이용해 나쁜 기억을 약화시킴으로써 이로 인한 심리적 영향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나쁜 기억을 오랫동안 상기하도록 할 경우 불안정해질 수 있으며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진정효과가 있는 약물의 최적용량을 알기 위해서는 대상자들의 뇌활성도를 측정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뇌파를 동시에 확인하면서 프로포폴을 사용할 경우 진정 및 의식소실 정도를 알 수 있어 나쁜 기억이 얼마나 약화되었는지 예측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